
홈페이지를 열고 나면 사장님들이 가장 자주 손대는 것이 메뉴 이름입니다. '회사소개'를 '브랜드 스토리'로 바꿔 보고, '제품'을 '솔루션'으로 고쳐 보고, 그래도 문의가 늘지 않으면 다시 되돌립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도 손님은 여전히 원하는 페이지를 못 찾습니다.
문제는 이름이 아니라 뼈대입니다. 어떤 내용이 어느 서랍에 들어가 있는지, 그 서랍을 몇 번 열어야 목적지에 닿는지를 정하는 일 — 이것을 정보구조(IA, Information Architecture)라고 부릅니다. 디자인 시안보다 앞서 결정돼야 하는데, 대부분의 소규모 사이트는 이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예쁜 화면부터 그립니다.
1. 조직도가 아니라 손님의 용건 순서로 짠다
망가진 메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회사 내부 부서 구조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는 점입니다. 손님은 '기술연구소'와 '품질관리팀'을 구분해서 들어오지 않습니다. 손님의 머릿속에 있는 건 용건뿐입니다.
- 이 회사가 내 문제를 다루는 곳이 맞나 → 무엇을 하는 곳인지
- 어떻게 해 주는데, 얼마인데 → 서비스·가격
- 믿을 만한가 → 작업 사례·후기
- 그래서 어떻게 연락하지 → 문의·오시는 길
메뉴 1단계는 이 네 가지 질문에 순서대로 답하는 구조여야 합니다. 사업자등록번호나 연혁 같은 항목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순서가 뒤라서 뒤에 둡니다.
2. 손님 다섯 명에게 카드를 직접 나눠 보게 한다
가장 저렴하고 가장 정확한 방법은 카드소팅입니다. 포스트잇에 우리가 만들 페이지 이름을 하나씩 적어 20~30장을 만들고, 실제 고객이나 고객과 비슷한 사람 다섯 명에게 자유롭게 묶어 보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그 묶음에 이름을 직접 붙이게 합니다.
이 작업을 해 보면 거의 매번 놀랍니다. 우리가 '서비스' 아래 두려던 항목을 손님은 '가격'으로 분류하고, '자주 묻는 질문'에 넣으려던 내용을 '배송·환불'로 따로 빼놓습니다. 다섯 명이면 큰 패턴은 다 드러납니다. 반나절이면 끝나는 일이고, 시안을 세 번 갈아엎는 비용보다 훨씬 쌉니다.
3. 1단계는 다섯에서 일곱 개, 깊이는 세 번 안쪽
상단 메뉴가 아홉 개, 열 개로 늘어나면 손님은 읽지 않고 훑습니다. 훑어서 안 보이면 그냥 나갑니다. 실무에서 안전한 기준은 이렇습니다.
- 1단계 메뉴 5~7개 — 넘어가면 두 개를 합칠 수 있는지 먼저 검토
- 어떤 페이지든 3클릭 이내 — 특히 문의·가격은 어디서든 1클릭
- 하위 메뉴가 하나뿐이면 승격하거나 없앤다 — 서랍 안에 물건 하나는 서랍이 아니다
메뉴가 자꾸 늘어난다면 페이지가 많은 게 아니라, 분류 기준이 두 가지 이상 섞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업종별'과 '기능별'을 같은 줄에 나란히 두면 손님은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매번 판단해야 합니다.
4. 이름은 우리 용어가 아니라 손님이 검색창에 치는 말로
'토탈 솔루션', '원스톱 케어', '프리미엄 라인업' 같은 이름은 회사 안에서는 통하지만 밖에서는 아무 정보도 주지 못합니다. 메뉴 이름은 손님이 실제로 쓰는 단어여야 합니다.
확인하는 방법도 어렵지 않습니다. 최근 받은 문의 메일과 전화 메모를 30건만 모아서, 손님이 우리 서비스를 뭐라고 불렀는지 그대로 적어 보세요. 검색 유입 키워드를 보면 더 정확합니다. 그 단어가 곧 메뉴 이름이고, 덤으로 검색 노출에도 유리합니다.
이름을 검증하는 간단한 테스트
메뉴 이름 목록만 보여 주고 "환불받고 싶으면 어디를 누르시겠어요?", "출장 가능한 지역을 알고 싶으면요?" 같은 질문을 던져 봅니다. 다섯 명 중 두 명 이상이 다른 곳을 짚으면 그 이름은 실패한 이름입니다.
5. 그림 한 장으로 먼저 합의하고 디자인을 시작한다
정보구조는 말로 합의하면 반드시 어긋납니다. 페이지 목록과 계층을 한 장짜리 사이트맵 그림으로 그려서 관계자 전원이 같은 그림을 보고 승인해야 합니다. 그림 한 장에는 이 정도가 담기면 충분합니다.
- 1단계·2단계 페이지 전체 목록
- 각 페이지의 목적 한 줄과, 그 페이지의 다음 행동(문의·전화·구매)
- 페이지별 담당자와 원고 마감일
이 그림이 확정되면 디자인·개발 일정이 흔들릴 일이 크게 줄어듭니다. 반대로 이걸 건너뛰면, 시안 3안까지 나온 뒤에 "메뉴를 하나 더 넣어야 할 것 같은데요"라는 말이 나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정리하면
메뉴는 디자인 요소가 아니라 손님이 우리 회사를 이해하는 지도입니다. 이름을 예쁘게 다듬기 전에 서랍을 제대로 나눴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카드소팅 반나절, 사이트맵 한 장 — 비용으로 치면 가장 싸고, 효과로 치면 가장 큰 작업입니다.
CYAN은 새 사이트를 만들 때도, 오래된 사이트를 손볼 때도 디자인 시안보다 먼저 이 사이트맵 한 장을 그려 함께 확인합니다. 지금 홈페이지의 메뉴가 자꾸 늘어나기만 한다면, 한 번쯤 서랍부터 다시 짜 볼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