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사는 "원고만 주시면 됩니다" 하고 갔는데, 사장님은 빈 문서를 사흘째 열었다 닫는다 — 작은 회사가 홈페이지 원고를 직접 쓰는 5가지 원칙

빈 문서가 열린 노트북과 백지 노트가 놓인 작은 가게 사장님의 책상

홈페이지 제작 일정이 밀리는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 개발이나 디자인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실제로 프로젝트를 여러 번 진행해 보면, 일정이 가장 오래 멈춰 서는 지점은 언제나 원고입니다. 디자인 시안은 일주일이면 나오는데, "회사 소개 글 한 페이지만 보내 주세요"라는 요청은 두 달을 끕니다.

사장님이 글을 못 써서가 아닙니다. 손님 앞에서는 우리 가게를 5분이면 설명하는 분들입니다. 문제는 빈 문서입니다. 아무 틀도 없는 백지 앞에 앉으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 커서만 깜빡입니다. 그래서 원고는 '글솜씨'의 문제가 아니라 '틀'의 문제로 접근해야 합니다.

1. 백지에서 시작하지 말고, 질문지에서 시작한다

글을 쓰려 하지 말고, 질문에 답한다고 생각하면 속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페이지를 열기 전에 아래 질문을 문서에 먼저 적어 두고, 한 줄씩 구어체로 답만 채우세요.

  • 우리를 찾는 손님은 보통 어떤 상황에서 검색을 시작하나요?
  • 그 손님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 세 가지는 무엇인가요?
  • 다른 곳 대신 우리를 고른 손님들은 나중에 뭐가 좋았다고 말하나요?
  • 우리가 못 해 드리는 일, 안 받는 일은 무엇인가요?
  • 문의 전에 손님이 미리 알아야 할 것(가격대·소요 기간·준비물)은 무엇인가요?

이 답변들을 이어 붙이면 이미 회사 소개와 FAQ의 8할이 만들어집니다. 다듬는 건 제작사의 몫입니다.

2. '우리 회사' 말고 '손님의 상황'부터 쓴다

많은 원고가 "저희는 2015년 설립 이래…"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손님은 우리 연혁을 궁금해서 들어온 게 아닙니다. 자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인지 확인하러 들어옵니다.

순서를 뒤집으세요. 첫 문단은 손님이 지금 겪고 있는 상황, 두 번째 문단에서 우리가 그걸 어떻게 다루는지, 회사 소개와 연혁은 그 뒤입니다. "설립 10년"은 자랑이 아니라 안심의 근거로 쓰일 때만 힘을 냅니다.

3. 형용사를 숫자와 장면으로 바꾼다

원고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최고의', '차별화된', '고객 만족'입니다. 문제는 경쟁사 홈페이지에도 똑같이 적혀 있다는 점입니다. 서로를 지우는 말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 "신속한 대응" → "문의는 영업일 기준 4시간 안에 답변드립니다"
  • "풍부한 경험" → "지난해 아파트 32세대 시공을 맡았습니다"
  • "꼼꼼한 시공" → "작업 전후 사진을 모두 남겨 함께 확인합니다"

덧붙여, 숫자를 쓸 때는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지역 1위' 같은 표현은 객관적 근거 없이 쓰면 표시광고법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니, 검증 가능한 사실만 적는 편이 안전합니다.

4. 페이지마다 분량을 미리 정해 놓는다

원고가 늦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얼마나 써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분량이 정해지지 않으면 끝없이 고쳐 쓰게 됩니다. 시작 전에 이렇게 못을 박으세요.

  • 메인 첫 화면: 한 줄 문장(25자 내외) + 보조 설명 두 줄
  • 서비스 소개: 항목당 제목 한 줄 + 본문 3~5줄
  • 회사 소개: 400~600자
  • 작업 사례: 건당 상황 2줄 + 진행 3줄 + 결과 2줄
  • FAQ: 질문 8개, 답변은 각 3줄 이내

이 틀만 있어도 "무한정 써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사라집니다.

5. 완벽한 초고 대신, 고칠 수 있는 초고를 넘긴다

가장 아까운 시간은 혼자 붙들고 있는 시간입니다. 문장이 어색해도, 맞춤법이 틀려도 괜찮습니다. 제작사는 다듬는 일을 할 수 있지만, 사장님 머릿속에만 있는 사실은 절대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정 막힌다면 말로 하세요. 휴대폰 녹음기를 켜고 위 질문지에 5분간 대답한 뒤 받아쓰기만 넘겨도 충분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받은 원고가 공들여 쓴 문어체 원고보다 훨씬 잘 읽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손님이 듣고 싶은 건 광고 문구가 아니라 사장님의 말투이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원고는 재능이 아니라 순서의 문제입니다. 질문지에서 시작하고, 손님의 상황을 앞세우고, 형용사 대신 사실을 적고, 분량을 미리 정하고, 완벽하지 않은 채로 넘기면 됩니다. 이 다섯 가지만 지켜도 두 달 걸리던 원고가 하루 이틀 만에 끝납니다.

CYAN은 사이트를 만들기 전에 이 질문지를 먼저 드리고, 사장님이 답한 내용을 바탕으로 페이지 구조와 문장을 함께 정리합니다. 홈페이지 준비가 원고 앞에서 멈춰 있다면, 글부터 쓰려 하지 마시고 질문에 답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