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출 상담을 노려 영문 페이지를 꼬박 한 달 만들었습니다. 제품 설명도 번역가에게 맡겼고, 메뉴에 작은 지구본 아이콘도 달았습니다. 그런데 반년이 지나도록 해외에서 들어온 문의는 한 건도 없습니다. 해외 거래처에 부탁해 현지에서 회사 이름을 검색해 달라고 했더니, 돌아온 화면 캡처에는 한국어 페이지가 떠 있었습니다.
번역이 잘못된 게 아닙니다. 검색엔진에게 "이 사이트에는 언어판이 여러 개 있고, 누구에게 무엇을 보여 줘야 하는지"를 알려 준 적이 한 번도 없었을 뿐입니다. 실무에서 반복해서 마주치는 지점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1. 언어마다 고유한 주소가 있어야 한다
가장 흔한 실패는 주소는 그대로 둔 채 화면만 바꾸는 방식입니다. 버튼을 누르면 자바스크립트가 글자를 영어로 갈아 끼우지만 주소창은 계속 같은 URL입니다. 이러면 검색엔진 입장에서 그 사이트에는 페이지가 하나뿐입니다. 영문 내용은 색인에 들어갈 자리조차 없습니다.
언어판은 각자 주소를 가져야 합니다. 작은 회사라면 example.com/en/ 같은 하위 폴더 방식이 가장 무난합니다. 도메인을 새로 사거나 서버를 나눌 필요가 없고, 그동안 한국어 페이지가 쌓아 온 신뢰도를 영문 페이지가 함께 물려받습니다.
2. 언어판끼리 서로를 가리키게 한다
주소를 나눴다면 다음은 연결입니다. 각 페이지 머리말에 hreflang 표기를 넣어 "이 페이지의 한국어판은 여기, 영어판은 여기"라고 명시합니다. 이 표기가 없으면 검색엔진은 두 페이지를 서로 남남으로 보거나, 심하면 비슷한 구조의 중복 문서로 취급해 한쪽을 내려 버립니다.
표기는 반드시 양방향이어야 합니다. 한국어 페이지에서만 영문을 가리키고 영문 쪽에서 되돌아오는 표기가 없으면 무시됩니다. 여기에 어느 언어에도 해당하지 않는 방문자를 위한 기본판(x-default)까지 지정해 두면 안전합니다.
3. 접속 국가로 언어를 강제로 바꾸지 않는다
IP를 보고 한국에서 접속하면 한국어, 해외면 영어로 자동 전환하는 설정은 언뜻 친절해 보입니다. 하지만 검색엔진의 수집 로봇은 대부분 해외 서버에서 들어옵니다. 자동 전환을 걸어 두면 로봇이 한국어 페이지를 아예 못 보거나, 반대로 국내 방문자가 영문 화면에 갇히는 일이 생깁니다.
자동으로 바꾸지 말고 권하기만 하세요. 화면 위쪽에 "English version available" 정도의 안내 띠를 띄우고 선택은 방문자에게 맡깁니다. 고른 언어는 쿠키에 저장해 다음 방문 때 기억해 주면 충분합니다.
4. 기계 번역만 올려 둔 페이지는 오래 못 버틴다
번역 플러그인을 붙여 스무 개 언어를 한꺼번에 켜 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초기에는 페이지 수가 늘어 색인도 늘지만, 몇 달 뒤 품질 평가가 돌면 대부분 조용히 빠집니다. 문장이 어색한 정도를 넘어 업계 용어가 엉뚱하게 번역되는 순간 신뢰도까지 깎입니다.
언어를 늘리는 것보다 하나를 제대로 하는 편이 낫습니다. 실제로 거래가 일어나는 시장 하나를 골라, 회사 소개·주력 제품·문의 방법 이 세 페이지만이라도 사람 손으로 다듬는 편이 스무 개 자동 번역판보다 훨씬 멀리 갑니다.
5. 언어가 다르면 검색어도 다르다
한국어 페이지에서 잘 걸리던 단어를 그대로 옮겨 놓는다고 영문 검색에 걸리지는 않습니다. 같은 제품이라도 현지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불립니다. 국내에서 "정밀가공"으로 찾는 부품을 해외 구매 담당자는 "CNC machining"이나 "precision parts"로 검색합니다.
영문 페이지를 만들기 전에 현지 구매 담당자가 실제로 쓰는 표현을 먼저 모으세요. 경쟁사 영문 사이트, 해외 전시회 자료, 기존 바이어가 보낸 메일 제목이 가장 확실한 표본입니다. 단위·통화·날짜 표기, 문의 폼의 전화번호 국가 코드까지 함께 손보면 이탈이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먼저 확인할 것은 번역 품질이 아니라 주소 구조
다국어 사이트가 검색에서 안 걸리는 원인은 대부분 문장이 아니라 뼈대에 있습니다. 언어마다 주소가 있는지, 서로를 가리키고 있는지, 로봇이 막히지 않는지. 이 셋만 맞춰도 그동안 묻혀 있던 영문 페이지가 검색 결과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CYAN은 수출 제조업체와 B2B 서비스 기업의 영문·다국어 사이트를 만들면서, 번역을 시작하기 전에 주소 구조와 hreflang 설계부터 먼저 확정합니다. 이미 영문 페이지가 있는데 해외 유입이 없다면, 구조만 점검해도 답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