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법인 '이음'의 대표 노무사가 처음 건넨 이야기는 홈페이지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상담 전화를 받으면 십중팔구 첫 십 분을 사실관계 확인에 씁니다. 직원이 몇 명인지, 상시근로자 기준으로는 몇 명인지, 언제 입사했고 어떤 계약서를 썼는지. 그걸 다 듣고 나서야 답할 수 있는데, 사장님은 그 십 분 동안 '왜 자꾸 딴 걸 묻지' 하는 얼굴이 됩니다."
노무는 답이 조건에 따라 완전히 갈리는 분야입니다. 상시근로자 5인 미만이냐 이상이냐 하나로 연장근로 가산수당도, 부당해고 구제신청 가능 여부도 달라집니다. 그런데 상담을 요청하는 쪽은 그 조건이 왜 중요한지 모른 채 전화를 겁니다. 상담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건 노무사의 실력이 아니라, 통화가 시작되는 시점에 정보가 하나도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홈페이지가 아니라 '상담 전 단계'를 만들기로 했다
보통 전문직 사무소 홈페이지는 대표 소개, 업무 분야, 오시는 길, 그리고 하단에 전화번호가 큼직하게 박히는 구조로 갑니다. 이음도 처음엔 그 형태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전화가 안 온다'가 아니라 '전화가 준비 없이 온다'였기 때문에, 전화번호를 더 키우는 방향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첫 화면의 주인공을 전화번호가 아니라 사전 진단 폼으로 잡았습니다. 다섯 문항입니다. 상시근로자 수, 상담이 필요한 주제(임금·해고·근로계약·산재·기타), 사건의 발생 시점, 현재 진행 상황, 연락 가능한 시간대. 여기에 자유 서술 한 칸을 더했습니다.
문항을 다섯 개로 줄이기까지가 실제 작업이었다
초안의 문항은 열넷이었습니다. 노무사 입장에서는 전부 필요한 정보였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다만 폼을 채우는 사람은 이미 마음이 급하고 대체로 화가 나 있는 상태입니다. 열네 칸짜리 양식 앞에서 사장님은 폼을 채우지 않고 그냥 전화를 겁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 답이 갈리는 질문만 남긴다 — 상시근로자 수처럼 답에 따라 결론이 바뀌는 문항은 남기고, 나중에 물어도 되는 건 뺐습니다.
- 객관식으로 낮춘다 — 서술이 필요한 칸이 많을수록 이탈이 급격히 늡니다. 다섯 문항 중 넷을 선택형으로 바꿨습니다.
- 왜 묻는지 한 줄로 붙인다 — '상시근로자 5인을 기준으로 적용되는 법 조항이 달라집니다'라는 안내 한 줄이 붙자, 답을 대충 찍는 비율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작업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려운 건 노무사가 '필요하다'고 말한 열네 개를 다섯 개로 깎는 대화였고, 그 대화에 가장 많은 시간이 들어갔습니다.
업무 분야 페이지는 사례가 아니라 '증상'으로 나눴다
업무 분야를 '임금체불', '부당해고', '산업재해'처럼 법률 용어로 나누면, 정작 검색해 들어온 사장님은 자기 상황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페이지 제목을 증상의 언어로 다시 썼습니다. '직원이 갑자기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습니다', '알바생 근로계약서를 안 썼는데 문제가 될까요', '권고사직으로 정리했는데 부당해고라고 합니다'. 법률 용어는 본문 안에서 자연스럽게 병기했습니다.
이 방식은 검색 유입에도 그대로 유리하게 작동합니다. 사람들은 '부당해고 구제신청 요건'이 아니라 자기 말로 검색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사용자를 배려한 문장이 그대로 검색 문장이 되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오픈 이후에 확인된 것
런칭 두 달 뒤 대표 노무사가 전한 변화는 문의 건수가 아니었습니다. 전체 문의량은 크게 늘지 않았습니다. 대신 폼을 거쳐 들어온 상담은 첫 통화가 십 분 정도 짧아졌고, 무엇보다 수임으로 이어지지 않을 상담이 통화 전에 걸러졌습니다. 관할이 다르거나 이미 시효가 지난 건은 폼 단계에서 안내로 정리됐습니다.
전문 서비스업 홈페이지에서 '문의 폭증'은 사실 좋은 지표가 아닙니다. 응대할 수 있는 상담의 총량은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밀도를 올리는 쪽이 실질적인 이익으로 돌아옵니다. 이음의 홈페이지가 한 일은 손님을 더 부른 것이 아니라, 통화가 시작되는 지점을 한 칸 앞으로 옮긴 것이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무소라면
세무, 법무, 노무, 관세처럼 상담이 곧 서비스의 입구인 업종은 구조가 비슷합니다. 홈페이지를 '우리를 소개하는 곳'으로만 두면 첫 통화의 부담은 그대로 남습니다. 소개는 두 번째 화면으로 내리고, 첫 화면에는 손님이 자기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질문을 놓아 보시길 권합니다.
CYAN은 이런 식으로, 만들 화면을 정하기 전에 그 화면이 없앨 불편부터 먼저 찾는 방식으로 작업합니다. 지금 홈페이지에서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응대가 무엇인지 한 줄로 정리되신다면, 대개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